선희씨, 감사합니다.
오늘 출판사에서 책을 몇 권 보내 주셨습니다. 제목은 "프로그래밍 얼랭". 부끄럽지만 제가 번역한 책입니다. 이번 번역이 첫 번역은 아닙니다만, 매번 '번역'이라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할 때마다 새롭고 또한 언제나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는 점입니다. "번역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금 잊을만 하면 또 하고 싶고 또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 까닭에서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번역하는 내내 "꼼꼼하지 못한 사람은 번역을 하면 안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다섯 분의 리뷰어들(한분, 두분, 세분, 네분, 다섯분)께서 마치 무예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처럼 어설픈 초벌 번역을 꼼꼼히 검토해 주시는 바람에  그나마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실은 고민고민 끝에 정한 단어를 두고 용어가 틀렸다고 말할 때는 많이 섭섭하기도 했고 또 더러는 조금 자존심 상하는 지적들도 없진 않았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더 많은 분들이 더 많은 회초리를 주셨더라면 아마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물론 원서를 더 오래 붙들고 더 오래 고치고 더 많이 다듬었다면 아마 더 훌륭한 번역서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역자의 역량이 뒷받침될 때 얘기겠죠. 이미 20년도 더 전에 얼랭 언어를 만들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개념을 발전시켜 온 저자의 내공을 불과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에 고스란히 따라가서 원서에 나오는 행간의 의미까지 아우를 수 있는 번역서를 내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일 겁니다. 오히려 번역이 반역이란 소리나마 듣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작은 위안을 삼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는게 당연하겠죠.

번역을 하다 보면, 사실은 작업 기간 내내 가장 신세를 많이 지게되는 분이 다름 아닌 출판사 편집자님입니다. 처음, 앞뒤 문맥도 맞지 않고 맞춤법마저 엉성한 원고를 받아서 그게 제대로 된 문장꼴이 되게 고치고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 가면서 혹시라도 있을 오역들을 찾아냅니다. 읽어서 선뜻 이해가 와닿지 않는 문장들을 빨간색 폰트로 꼼꼼히 지적하고 대안으로 더 좋은 문장을 제시해주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진대, 색인이며 페이지 맞추기, 오타교정 등등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처리해 주시니 뭐라 감사의말씀을 전해야 할까요.

사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번역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공은 편집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렇지만 한 권의 번역서에서 역자가 자유로이 얻어 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결국 역자 서문을 달 수 있는 한 두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고 그 나마도 이런 저런 얘기를 주절거리다 보면 편집자에게 올리는 감사 인사는 언제나 아무도 읽지 않는 서문의 맨 마지막 언저리 한 구석에 이름 석 자 달랑 올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시간을 내어 책을 만들어주신 편집자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한번 전해 봅니다.
by thinkr | 2008/06/12 17:17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by 김성안 at 2008/06/12 17:35
게다가 미인이시라는거 ^^;
Commented by ssun at 2008/06/12 18:40
석준님, 안녕하세요? 글을 보고 황송한 마음에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야말로 석준님의 책을 작업할 때는 항상 배우고 얻는 것이 많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심혈을 기울어 번역을 하시는 열정과 꼼꼼함, 훌륭한 결과물임에도 늘 겸손하신 모습까지, 부족한 제가 배울 점이 엄청 많음을 또 느끼네요. 앞으로도 저희와 계속, 끊임없이, 오래오래 함께해주시면 안 될까요?ㅋㅋ 이번에 너무나도 수고해주신 '프로그래밍 얼랭'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참, 저희 사무실 이전하면 꼭 한 번 놀러오세요~^^
Commented by 낭만고양이 at 2008/06/13 10:38
책이 배달되어서 잘 받아 봤습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원래 공들여 번역한 원고에 누가 토를 달면 기분이 상하는 일도 생기죠.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더 좋은 책이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번역하는 책도 리뷰좀 해주세요 ㅎㅎㅎㅎ
Commented by 짱가 at 2008/06/16 10:57
책 배달되어서 잘 받았습니다.
참 수고하셨습니다.
Commented by 인간흉기 at 2008/06/28 01:48
책 잘 읽고 있습니다. 얼랭이라는 언어에 관심이 좀 생겼었는데 번역되어 나온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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