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쪼개도알수없는세상 by thinkr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두어 달 전 자주가는 어느 시내 한 서점의 과학 신간 코너였던 걸로 기억한다. 간혹 교양과학에 관한 책들을 읽는 걸 즐기는 나는 우연히 매대에 놓인 이 책을 발견하고서는 금새 책 냄새를 맡았고 흥미를 느껴 내 온라인 서재 책장에 찜해 두었다. 그리고는 그냥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이 책을 다시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 필요한 자료를 찾을 게 있어서 근처 공공도서관 자료실에 들러 자료를 빌려 나오는 길에 우연히 서가 한쪽 모퉁이에 꽂혀 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는 덥썩 물어 담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책이 그저 일본의 한 오타쿠 과학자가 그야말로 '오타쿠'를 가지고 바라 본 세상에 관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려니 하고 생각했었지 이 책이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아니 아마 알았더라면 아예 책을 집어 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대한 안좋은 기억 탓에 나는 그 이후로 화학이라고 하면 일단 고개부터 돌리는 스타일이기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고서 주말 내내 꾸역꾸역 책을 읽더니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서야 책장을 덮은 까닭은 무얼까? 일단 한번 읽기로 작정한 책이니 그냥 끝까지 한번 읽어 보자는 심정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읽으려고 사놓고도 몇 쪽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만두고 책장 어느 한 구석에 던져 둔 책들의 양을 생각한다면, 내가 빌린 책 한 권에 그다지 큰 애착을 갖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


이 책에는 과학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뭐랄까 묘한 매력이 있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탐구하고 찾아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힐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세상의 실체.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인간의 모습이 마치 소설 읽는 것처럼 책 속에서 펼쳐졌다고 하면 그럴듯한 설명이 되려나. 랑게르한스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이태리의 한 항구도시가 등장하고, 어느 화가의 그림 속 비밀을 캐는가 싶더니만 느닷없이 뇌사와 암세포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천공의 성이 등장하다가 다시 영화 <Powers of Ten>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두서 없이 흩어 놓은 듯한 소재들이 어쩌면 이렇게 딱딱 아귀가 맞을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통해 후쿠오카 신이치라는 사람을 새로 만났다.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이면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의 한 지성이라고 한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가면서도 그 전문성의 벽을 허물어 세상과 대화하려는 사람들을 나는 존경한다. 아니 부러워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니 저자의 다른 책들에도 관심이 동한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 <모자란 남자들>, <동적평형>. 그러고 보니 하나같이 관심을 자극하는 제목들이다. 게다가 다행히도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가 나머지 책들도 모두 번역해 두었으니 이제 남은 일이라곤 그저 잘 차려진 밥상에 엉덩이만 들이대면 끝나는 일. 그럼에도 나의 망설임은 여기서 맴돌고 내 마음 속에 두 개의 내가 경합한다. 더 읽고 더 빠져들고픈 마음과 이쯤에서 그만하고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가려는 마음. 어찌보면 둘 다 같은 곳인데. 결국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바로 그 세상 속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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