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블로깅 vs. 라이프로깅 by sjoonk

"내가 죽으면 내 모든 디지털 기록들은 다 어떻게 될까?"


가끔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 보곤 한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죽는다면? 그 동안 내가 주고 받았던 이메일이며 추억이 담긴 사진들, 내가 문서로 저장해 두었던 글이며 메모들, 그리고 이젠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를 때가 생기곤 하는 블로깅과 각종 소셜 네트워킹의 기록들. 이런 내 모든 기록들은 다 어떻게 될까하고. 뭐 물론 죽고나면 어떻게 되건 무슨 상관이람 할 수도 있을 테고 그냥 먼지처럼 사라지겠거니 하며 대수롭쟎게 여기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기록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만들어 내는 다양한 기록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라이프블로깅(life blogging)이고 다른 하나는 라이프로깅(life logging)이다. 블로깅과 로깅이 뭐가 다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블로깅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된 웹 상에 올리는 것인 반면, 로깅은 나의 삶을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도록 나만의 공간 속에 보관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전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 올린 글이라면, 후자는 혼자만 보는 일기장 같은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의 삶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드는 기록은 그렇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 보고 이용한다는 생각에서 만드는 기록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생긴다.


라이프블로깅은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라이프로깅은 한다. 그 흔한 블로그나 SNS 한번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컴퓨터에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하고 가족과 함께 보낸 소중한 기억들을 담은 사진을 폴더에 저장하고 영수증을 스캔하고 신문을 스크랩하며 생일카드나 기념이 될 만한 물건들을 보관한다. 비유야 다르겠지만, 정신분열을 극복하고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존 내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 러셀 크로가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비밀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 기록을 모아 나가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나만의 기록을 만들고 그 기록을 통해 나만의 우주를 만들어 나간다.



라이프로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기억을 하기 위함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과학자로 '완전한 기억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는 고든 벨이 쓴 <디지털 혁명의 미래>에서는 이런 인간의 기억을 크게 '근육기억', '의미기억', '자전적 기억' 이라는 세 가지 다른 시스템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근육기억(절차적 기억)'은 자전거를 타거나 발레, 스포츠 처럼 물리적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기억이고, '의미기억'은 말 그대로 어떤 의미나 개념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자서전적 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경험에 대한 기억을 일컫는다. 이 중 근육기억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야 금방 나오기 힘들겠지만, 두번 째와 세번 째 즉, 의미에 대한 기억과 경험에 대한 기억은 라이프로깅에 의해 확장될 수 있다.


요즘은 갈수록 좋아지는 디지털 도구들 덕에 라이프로깅과 라이프블로깅 하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다. 모바일 디바이스와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은 우리의 전자기록과 전자기억을 부추키기까지 한다.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다. 누구든 나름대로 몇 가지씩 자신만의 도구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의미기억을 위한 용도로는 위키(wiki)를 쓰고, 경험기억의 용도로는 이메일과 Posterous를 애용한다. (참고로 Posterous는 이메일로 쓰는 블로그 서비스인데 블로그 자체를 비공개로 설정할 수가 있다) 경험기억을 위해 이메일을 사용하는 걸 구닥다리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디서건 간편하게 기록하여 저장하는데 이메일만큼 간단하면서도 쉬운 도구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내가 죽으면? 아마 내 모든 디지털 기록들은 내 컴퓨터 속 하드디스크 어딘가와 (그보다는 훨씬 더) 내 계정의 클라우드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핑(ping)을 때려 보기 전엔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도리가 없을 그 기억들은 어쩌면 나보다도 더 오래 살 것이다. 그 무렵 나는 그때까지 라이프로깅 모드로 관리해 오던 내 기억의 스위치를 "공개" 모드로 돌릴 작정이다. 클릭 한번이면 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끄러운 기록들이지만 혹시라도 내 기록이 누군가 다른 이에게 추억이 되고 지도(map)가 될 수만 있다면.


덧글

  • net진보 2011/08/18 21:56 #

    음;;;문제는 그 기록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체가 얼마나 그 기록을 온전히 보관 유지를 해주느냐가 문제겟죠;;그것으로 얻는 이익에 관한 유족들의 분배와관련한 소송도있을수가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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