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점심"의 경제학 by sjoonk

얼핏 보면 무상급식부자감세와 닮았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 부자 부모를 둔 아이 가릴 것 없이 모든 아이에게 국가가 공짜로 점심을 제공하는 것이니 부자 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에 내는 돈이 줄어드는 것이고 따라서 부자감세라고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정작 부자감세를 주창하는 집권 여당에서는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부자감세를 반대하는 야당에서 무상급식을 들고 나오는 걸까?


정치나 교육 관점은 잘 모르니 접어 두기로 하고, 경제 관점에서만 한번 생각해 보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려면 점심값을 내야 한다. 아이들은 돈이 없으니 부모가 밥값을 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이를 통해 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낸다. 급식비를 은행계좌로 입금하라는 내용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수익자 부담이다. 즉 혜택을 얻는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경제 원칙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아이의 집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어떡할까.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가정의 아이에게 급식 제공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만 한다.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때 만약 학급의 여유있는 학부모들이 나서서 십시일반 비용을 분담하거나 선생님이 월급에서 부담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국가가 나서서 부담할 수 밖에 없고 이 때부터 수익자 부담이라는 원칙은 무너진다. 정부의 부담이라는 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궁극적으로는 부담은 국민의 몫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는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지칭한다.


이 때 물론 범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과연 어디까지 부담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즉 수익자 부담의 예외를 인정하는 범위의 문제다. 그 범위는 소득 하위 10%가 될 수도 있고 하위 50%가 될 수도 있지만, 하위 99% 혹은 소득 상위 50%라고 해도 상관없다. 경제논리로만 놓고 봤을 때는 누가 혜택을 입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수익자 부담의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비율(%) 역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1%가 되었건 100%가 되었건 결국 수익자 부담의 예외일 뿐이다.


수익자 부담이 지켜지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 문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다. 내가 돈을 내는 게 아니니 아껴 쓸 생각이 적어지고 소위 공유지의 비극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거론하지 말자. 논의의 초점을 흐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비용을 부담하는 측으로 돌아와 보자. 어쨌거나 그 비용은 국민이 부담하며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존 지출을 조정하든 아니면 세금을 더 걷을 수 밖에 없다. 개인으로부터 소득세를 걷든 기업으로부터 법인세를 걷든 어쨌거나 세금을 걷어야 하고, 세금제도가 누진세제, 즉 소득이 많으면 세금도 많이 내는 구조로 되어있는 우리 나라에서 결국 그 부담은 소득이 많은 측에 많이 돌아가게 된다. 이제야 우리는 알 수 있다. 왜 얼핏 보기에 부자감세처럼 보이는 무상급식을 소위 "부자당"이라고 하는 집권여당에서 반대하는가 하는 이유를 말이다. 결국 (경제 관점에서 보자면) 수익자 부담에서 벗어난 비용의 부담 문제이니 그 벗어나는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자들의 세부담도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가령, 우리집에는 학교 다니는 아이가 없는데 옆집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산다고 하자. 나는 그 옆집 아이의 점심값을 내야 할까?


이제 무상급식 투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1. 형편이 가난하면 내가 부담할 수도 있지만, 잘 사는 집까지 굳이 내가 부담할 이유가 있을까.
  2. 가난하건 아니건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내가 부담해도 상관없다.
  3. 나는 관심 없으니 알아서들 하쇼. (결국 2번이 된다된다고 한다.)
p.s. "이러저러한 까닭"에 부쳐:

여기서 "이러저러한 까닭"은 경제와는 무관한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사람들 개개인이 가진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가령 아이의 교육과 아이의 미래는 공동체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 조금 더 큰 호혜주의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분투(ubuntu) 정신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로 그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덧글

  • net진보 2011/08/18 21:54 #

    1,2번의 경우 내가 부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납세자들이 있다는것이라 다행이지만....
    내가 내도되지만 왜 내가 내야하지 나보다 돈잘버는 사람들이 대신내야한다는 분들이 있다는게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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